💡 오늘 <경제 한입>을 읽으면 아래 내용을 알 수 있어요!
- AI 경쟁의 승패가 GPU가 아닌 전기·물·주민 동의에서 갈리는 이유
- 미국에서 153조 원 규모 데이터센터 사업이 착공도 못 하고 무산된 배경
- 한국의 AI 메가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세 가지 과제
정부가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2035년까지 18.4기가와트(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확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원전 약 18기가 생산하는 전력에 맞먹는 수준인데요. AI 산업이 커지면서 데이터센터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떠올랐고, 이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관건이 됐습니다.
문제는 이 계획에 세 가지 걸림돌이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시설을 24시간 가동할 전력, 서버를 냉각할 물, 그리고 지역 주민의 수용성인데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세 가지 문제로 총사업비 1,000억 달러(약 153조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사업이 착공도 못 한 채 무산됐습니다. 오늘 <경제 한입>에서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의 성패를 가르는 이 세 가지 걸림돌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걸림돌, 전기
⚡ 도시 하나를 삼키는 하마
데이터센터를 짓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전기입니다. 흔히 데이터센터라고 하면 서버가 빼곡히 들어선 건물을 떠올리지만, 요즘 AI 데이터센터는 규모가 완전히 다릅니다. 일반적인 대형 데이터센터 한 동은 100~300메가와트(MW) 정도의 전기를 쓰는데요. 최근 AI 특화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기는 1GW, 즉 1,000MW 단위로 늘어났습니다. 단지 하나가 중형 도시 전체, 혹은 초대형 제철소에 맞먹는 전기를 빨아들이는 셈입니다. 전기 먹는 하마라는 표현이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전기를 이렇게 많이 먹는 주범은 그래픽카드(GPU)입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엔비디아 GPU 랙 한 대의 전력 소비는 2020년 13킬로와트(kW)에서 2025년 130kW로 늘었습니다. 불과 5년 만에 10배로 뛴 것인데요. 앞으로는 600kW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국내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사용량도 작년 8.2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18.0TWh로 두 배 넘게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죠.
GPU 랙: 여러 대의 그래픽처리장치를 하나의 캐비닛에 모아 놓은 설비입니다. AI 학습에는 수천~수만 개의 GPU가 동시에 작동하는데, 세대가 바뀔 때마다 성능과 함께 전력 소비도 빠르게 커집니다.
🏭 완공해 놓고도 켜지 못하는 역설
전기를 싣고 나를 길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데이터센터는 보통 1~2년이면 지을 수 있지만, 전기를 실어 나를 고압 송전망을 까는 데는 5~7년이 걸리는데요. 여기에 변압기 같은 핵심 설비마저 공급이 달려 몇 년씩 대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JP모건에 따르면 2027년 완공 예정인 미국 데이터센터의 60% 이상이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했습니다. 실리콘밸리 인근 산타클라라에서는 냉각 설비까지 다 갖춘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받지 못해 멈춰 서 있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력회사들은 데이터센터 개발사에 전기를 직접 확보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소형모듈원자로(SMR)입니다. 미국 빅테크들은 이미 SMR 개발사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맺는 단계까지 갔는데요. 구글은 카이로스파워로부터 500MW를, 아마존은 X-에너지에 5억 달러를 투자해 2039년까지 5GW 이상을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데이터센터 기업도 사실상 발전소를 확보해야 경쟁력이 생기는 구조가 된 겁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존 대형 원전보다 출력이 적고, 주요 설비를 공장에서 만든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차세대 원자로입니다. 건설 기간이 짧아 데이터센터처럼 대규모 전력이 꾸준히 필요한 시설의 전력원으로 주목받습니다.
계약 규모만 봐도 변화하는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와 SMR 개발사 간 전력 인수 계약은 2024년 말 25GW에서 2025년 말 45GW로 늘었습니다. 1년 만에 약 80% 증가한 것인데요. 아마존과 구글 등 빅테크 4개사가 최근 1년간 확보한 신규 원자력 발전 용량만 10GW를 넘어섰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많이 쓰는 시설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원전을 통째로 사들이는 큰손이 된 셈입니다.
한편,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미국과 중국, 캐나다가 SMR을 국가 인프라로 직접 키우는 동안, 한국은 이제 막 부산 기장군을 첫 혁신형 SMR 후보지로 정한 단계인데요. 착공 목표는 2030년, 준공 목표는 2035년입니다. 실제 가동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송전 인프라입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데이터센터까지 안정적으로 보내려면 345~765킬로볼트(kV)급 초고압 송전망과 변압기가 필요한데요. 메가프로젝트 발표 직후 HD현대일렉트릭, LS ELECTRIC, 대한전선 등 전력기기·초고압 전선 업체 주가가 급등한 것도 이런 기대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두 번째 걸림돌, 물
💧 조용히 불어나는 청구서
전기 뒤에 숨어 조용히 커지는 문제가 물입니다. 수만 대의 서버가 뿜어내는 열을 식히려면 엄청난 양의 냉각수가 필요한데요. 환경·에너지연구소(EESI)는 대형 데이터센터 한 곳이 하루에 최대 1,900만 리터의 물을 쓸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인구 1만~5만 명 도시의 하루 물 사용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아마존의 데이터센터만 살펴봐도 이런 막대한 물 소비량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아마존은 작년 데이터센터에서 946만 톤의 물을 사용했는데요. 이는 시애틀 광역권이 1년간 쓰는 물의 약 5%에 해당합니다. 심지어 공개된 숫자마저 전체의 일부일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기업들이 밝히는 물 사용량에는 서버를 직접 식히는 데 쓰는 물만 포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정작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에서 쓰는 물은 빠지기도 합니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는 이런 간접 물 사용량이 직접 물 사용량보다 평균 12배가량 많다고 분석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숫자가 실제 물 발자국의 13분의 1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뜻인데요. 데이터센터의 물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훨씬 덜 드러난 문제인 셈입니다.
간접 물 사용량: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대는 발전소가 발전 과정에서 소비하는 물을 뜻합니다.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력이 많을수록 함께 늘어나지만, 현재 미국에는 이를 공개할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 하필 목마른 땅에 몰리는 이유
더 큰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꼭 물이 넉넉한 곳에 들어서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신규 데이터센터의 약 3분의 2가 애리조나주 피닉스처럼 물 부족에 취약한 지역에 세워집니다. 세레스는 피닉스 지역 데이터센터의 물 수요가 2031년이면 도시 전체 물 사용량의 20%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는데요. 산업과 주민이 한정된 물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 문제는 이미 지역 갈등의 뇌관이 됐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xAI가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운영하는 데이터센터 ‘콜로서스’는 전력과 용수 사용을 둘러싸고 주민 반발에 부딪혔는데요. 결국 계열사 스페이스X가 인근 주민에게 스타링크 인터넷을 반값에 제공하고, xAI는 중단됐던 폐수 재활용 시설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을 확보하는 일이 곧 지역사회의 마음을 얻는 일과 연결된 겁니다.
기업들이 물을 거의 쓰지 않는 냉각 기술에 관심을 돌리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 등은 폐쇄형 냉각 기술을 검토 중이라 알려졌는데요. 냉각수를 계속 새로 끌어다 쓰는 대신, 내부에서 순환시키는 방식이죠.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물을 덜 쓰는 기술 자체가 경쟁력으로 자리 잡는 흐름입니다.
세 번째 걸림돌, 사람
🚨 미국을 뒤흔든 반대의 물결
전기와 물을 모두 확보해도 마지막 관문이 남습니다.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미국에서는 소음과 전기요금 인상, 물 부족을 이유로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번지는데요. 반대 여론을 추적하는 데이터센터워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만 주민 반대로 멈추거나 미뤄진 프로젝트가 75건에 달했습니다. 금액으로는 1,300억 달러, 우리 돈 약 197조 5,000억 원 규모입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버지니아주의 디지털 게이트웨이 프로젝트입니다. 총사업비 1,000억 달러, 약 153조 원 규모로 세계 최대급 데이터센터 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이었는데요. 축구장 1,100개 넓이 부지에 데이터센터 37개 동을 세우는 초대형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민 반발과 행정 절차 하자가 겹치면서 결국 백지화됐습니다. 착공도 못 한 채 3년 만에 좌초된 거죠.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전기와 물 때문만이 아닙니다. 냉각설비와 비상 발전기가 밤낮없이 돌아가며 만드는 저주파 소음도 큰 문제인데요. 일부 주민은 이를 고문이라고 표현할 정도죠. 여기에 보안용 야간 조명으로 인한 빛 공해, 완공 후 상시 고용은 100여 명에 그치는 낮은 고용 효과까지 겹치면서 불만이 커졌습니다. 부담은 주민이 지고, 이익은 빅테크가 가져간다는 인식이 퍼진 건 더욱 문제가 됩니다.
이 불만은 곧바로 제도권의 논쟁으로도 옮겨붙습니다. 주지사의 서명 거부로 무산됐지만, 메인주에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20MW를 넘는 데이터센터의 신규 승인을 일정 기간 중단하는 법이 통과됐고, 뉴욕과 오클라호마 등 여러 주에서도 비슷한 규제를 검토 중이라 알려졌는데요. 로이터와 입소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4%가 데이터센터를 빠르게 짓는 데 반대했고, 77%는 AI 때문에 전기요금이 오를까 걱정한다고 답할 정도로 여론이 심상치 않은 탓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빅테크 경영진을 백악관에 불러 "전기요금은 기업이 부담하라"라는 서약까지 받아내는 등 정치권 또한 여론에 반응하는 모습이죠.
🇰🇷 한국을 기다리는 님비 역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데이터센터는 올해 초 주민 민원으로 공사가 한 달 반가량 멈췄다가 재개됐고, 과천 주암지구에서는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건립 백지화를 요구합니다. 정부가 2035년까지 1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확보하겠다고 밝힌 만큼, 초기에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하면 미국이 겪은 갈등을 그대로 반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는 독특한 님비 역설이 있습니다. 데이터센터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유치하려 하지만, 정작 그 데이터센터를 돌릴 전력 인프라는 꺼리는 모순인데요. 한 조사에서 국민 87%가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자기 지역에 원전이 들어서는 데는 51.3%가 반대했습니다.
님비: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Not In My Back Yard)의 약자로, 시설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자기 지역에 들어서는 것은 반대하는 현상입니다. 발전소, 송전선로,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인프라에서 특히 자주 나타납니다.
이 세 가지 걸림돌이 한꺼번에 모이는 시험대가 바로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입니다. 정부는 광주 군공항 부지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전력 6.28GW와 하루 65만 톤의 산업용수를 동시에 확보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전력은 장성 신장성변전소를 축으로 초고압 송전망을 깔고, 물은 새 댐을 짓기보다 동복댐·주암댐 등 기존 댐 5곳을 활용하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송전선로 노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댐 증고나 용수 배분을 둘러싼 주민·농민과의 협의도 남아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력·용수는 다른 절차가 끝난 뒤가 아니라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반도체 공장을 짓는 일보다, 그 공장을 돌릴 기반을 먼저 마련하는 일이 더 어려운 과제가 된 것입니다.
다만 걸림돌이 곧 기회가 될 여지도 있습니다. 정부가 통상 4~5년 걸리던 송전망 사전 절차를 1년, 나아가 6개월 안에 끝내겠다고 밝힌 만큼, 전력기기와 원전, 수처리 기업에는 새로운 수주 기회가 열릴 수 있는데요. 관건은 속도만 앞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주민 동의라는 마지막 단추를 건너뛰면, 미국처럼 수백조 원 규모 사업도 한순간에 멈춰 설 수 있기 때문이죠.
AI 경쟁은 더 이상 누가 GPU를 많이 사느냐의 싸움만이 아닙니다. 전기를 먼저 확보한 나라가 이기고,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지역이 이기며, 주민의 신뢰를 얻은 곳이 결국 공장을 짓습니다. 반도체와 AI를 둘러싼 경쟁은 이제 칩보다 인프라를 둘러싼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데요. 896조 원짜리 메가프로젝트 청사진의 성패도 결국 전기와 물, 그리고 사람이라는 세 가지 숙제를 얼마나 빨리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